《양산천의 5월, 햇살보다 따뜻한》
5월, 양산의 초여름은 따스하다. 찬바람이 머물던 겨울의 그림자도, 머뭇대던 봄의 미련도 모두 뒤로 물러난 자리. 이 계절, 자연은 더욱 너그러워지고 사람들의 마음도 한결 부드러워진다. 그 한복판에 양산천은 단순한 물줄기를 넘어, 삶의 풍경을 완성하는 따뜻한 존재로 다가온다.
지금 양산천은 금계국으로 물들어 있다.
양옆으로 흐드러지게 핀 금계국은 마치 황금빛 바다가 넘실대듯, 햇살을 품고 바람에 출렁인다.
걷는 이의 발끝을 따라 펼쳐지는 노란 물결은 누구에게나 설렘을 안겨준다.
그 모습은 그저 아름답다기보단, 마치 계절이 손으로 써 내려간 편지처럼 다정하다.
양산천은 오래전부터 나의 쉼터였다. 젊은 날엔 자전거를 타고 이 길을 달렸고, 어느 시절에는 아이 손을 꼭 잡고 함께 걸으며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눴다.
계절 따라 바뀌는 바람의 언어를 들었고, 꽃향기에 실린 생의 기쁨을 느꼈다. 하지만 그 모든 순간들 중에서도, 금계국이 활짝 핀 5월의 양산천은 가장 마음을 들뜨게 만든다.
금계국의 꽃말은 ‘상쾌한 기분’이라고 한다.
어쩌면 이보다 더 어울리는 말이 있을까. 금빛 꽃길을 걷다 보면 어느새 마음이 가벼워지고, 무심코 짓는 미소가 얼굴을 밝힌다. 일상의 무게도, 지친 마음도 잠시 내려놓게 되는 시간. 봄과 여름의 사이, 햇살은 부드럽고 공기는 싱그럽다. 양산천 뚝반길을 걷기만 해도 좋고, 바라보기만 해도 행복하다.
이 아름다운 길은 상북면에 내려오는 산책로부터 시작된다.
물가를 따라 난 뚝길은 오르막도 내리막도 거의 없어 남녀노소 누구에게나 편안한 길이다. 금계국은 길 양쪽으로 가득 피어나 마치 누군가가 이 길을 정성껏 꽃으로 수놓은 듯하다. 바람이 스치면 꽃들이 서로를 간질이며 출렁이고, 햇살을 받으면 금빛 파도가 되어 흐른다.
사람들은 이 길을 걸으며 사진을 찍고, 웃음을 나눈다.
연인은 금계국 한 송이를 따서 서로의 귀에 꽂아주고, 아이는 벌을 쫓으며 까르르 웃는다. 노부부는 말없이 손을 맞잡고 걸음을 맞춘다. 평범한 하루의 풍경이 이 꽃길 위에서는 한 편의 시처럼 다가온다. 그 모습 하나하나가 아름다운 풍경이자 삶의 한 조각이다.
양산는 자랑할 만한 자연이 많다. 통도사, 내원사, 홍룡폭포, 법기수원지 같은 ‘양산팔경’은 이름값이 있는 명소들이다. 하지만 양산천은 그런 유명한 곳들 사이에 소박하게 빛나는 일상 속의 명경(名景)이다.
자연은 그 안에서 살아가는 사람들과 어우러질 때 가장 찬란하다. 양산천이 아름다운 이유는 금계국 때문만은 아니다.
그 꽃을 바라보는 사람들의 따뜻한 시선, 강을 아끼는 마음, 계절을 느끼며 오늘을 살아가는 이들의 미소가 이 길을 더욱 특별하게 만든다. 매년 봄이 가고 여름이 오는 이맘때면, 나는 어김없이 이 길을 걷는다. 때로는 멈춰 서서 금빛 물결을 바라보며 마음이 일렁인다. 한 줄의 시가 문득 떠오르곤 한다.
“햇살보다 따뜻한 건, 함께 걷는 이 길 위의 당신 미소.”
그럴 때면 혼자가 아님에 감사하고, 이곳 양산에 살고 있음이 자랑스럽다.
누군가 말하길, 금계국은 번식력이 강해서 금세 퍼진다고 했다. 그래서 더 좋다. 꽃은 피어 있어야 한다. 이 아름다움은 더 많은 사람과 나누어야 한다. 누군가가 걷는 길마다, 누구의 하루에도 금계국이 환하게 피어 있다면, 세상은 조금 더 다정해질 것이다.
양산천의 금계국 군락은 단순한 풍경이 아니다. 그것은 일상 속 자연의 축복이자, 마음의 안식처이며, 계절이 조용히 건네는 위로의 손편지다. 오늘도 누군가는 그 길을 걷고 있다.
햇살 아래, 금빛 꽃잎 사이로 천천히 걸어가는 사람들. 그들은 꽃의 언어를 이해하고, 그 아름다움 속에 자신만의 기억을 새긴다. 언젠가 이 길에서 나 역시 누군가에게 작은 기쁨 하나를 건넬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그날이 특별하지 않아도, 이 노란 물결 속에서는 모든 하루가 반짝이고 있다.
@강동환 기자